삼미특수강 노동자들에 대한 포항제철의 고용승계 거부 사건 개요

1996년 12월 26일 포항제철(주)가 삼미특수강(주)를 부분 인수한다는 발표 이후 1997년 2월 17일 자산매매 계약서가 체결되었다. 그리고 포항제철 회사측은 1986년 설립된 삼미특수강노동조합이 삼미특수강 회사와 10년간 유지해온 단체협약의 내용을 무시한채 기존 노동자의 일부만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려 하였다.

당시 삼미특수강 노동자들의 평균 근무년수는 15년, 평균 연령은 40대인 가장들로, 가정적으로 보면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어 중대한 시기였다.
포항제철이 삼미특수강을 인수한 것은 기업내의 인적·물적 자원의 일체를 인수하는 것으로, 사실은 '기업(사업 또는 영업) 전체를 인수'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항제철 회사측은 소위 '자산의 인수'라는 방식을 취했다. 따라서 삼미특수강 노동자들은 선별적으로 포항제철에 '재입사' 절차를 밟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과거 노동조합 활동을 활발하게 하거나 회사측에 찍혀 있었던 노동자들은 굴욕적인 재입사원서를 내고도 채용되지 못하였다.

이로써 2,342명(비노조원인 관리직 포함) 가운데 2천여 명이 하루아침에 조합원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길거리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여기서 포항제철(주)가 의도하는 것은 회사에서 이전부터 취해오던 '무노조 방침'을 고수하는 것이 분명했으며, 이러한 자산인수 방식을 통한 노조 와해는 노동계로부터 신종 탄압수법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이는 국가 공기업인 포항제철이 명백하게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3권의 하나인 단결권, 그리고 ILO 조약상의 결사의 자유를 무참히 짓밟은 것이다.

이러한 포항제철 회사측의 잘못된 처사(고용승계, 노조승계, 단협승계 거부)에 항거하여 삼미특수강의 200여 노동자들은 3년이란 긴 세월동안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포항제철이 사용한 자산인수 방식은 참으로 악랄한 것이었다. 노동조합을 일거에 무력화시킬 수 있는 것이며, 10년이 넘게 피땀으로 확보해 놓은 노동자들의 유일한 근로조건의 기준일 수 있는 단체협약도 휴지조각이 되어버리게 되고, 회사측의 입맛에 맞게 노동자들을 해고할 수 있게 되는 등 일석삼조의 효과를 노린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맞서 삼미특수강 노동자들은 대한민국 사법 심판기구에 구제를 요청하기에 이른다. 우선, 노동부 산하에 있는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라는 심판기구에서 모두 고용과 관련하여 복직판결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포항제철은 이에 불복하고 서울고등법원에 항소를 했지만 법원에서도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의 요구가 정당하다고 손을 들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항제철은 여전히 법원의 판결을 이행하기는커녕 또다시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하는 등 시간끌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어느덧 3년이 흘렀고, 여전히 삼미특수강 노동자들은 길거리에서 맴돌 수밖에 없는 상태이다.

이처럼 한 사건을 심판하는데 3년의 세월이 흐른다는 것은 약자의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가혹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회의 기초단위인 가정은 파탄되어 갔다. 이광수 노동자(41세)는 이혼과 재혼을 하며 결국 고등법원까지 승소했는데도 목을 매달아 한 많은 삶을 마감해야만 했다. 그리고 많은 노동자들이 계속되는 길거리 투쟁으로 위염, 간 질환 등 몸은 병들어가고, 가정의 부채는 늘어만 가고 있다. 이이들은 가출하기가 일쑤고, 부부싸움이 잦아 가정에 웃음이 사라진지 오래다. 결국 부인들의 돈벌이로 겨우 하루하루 연명하는 나날이 3년동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더더우기 정부는 생존권을 내걸고 싸우는 노동자들에게 온갖 민형사상의 제약(구속, 불구속, 벌금 450만원, 기소유예, 구류처분 등)을 가하면서, 정작 복직판결을 따르지 않는 포항제철 사장을 2년 전에 고발해 놓아도 정부와 검찰은 그대로 방치만 하고 있다.

결국 이 사건은 거대 자본이 노동자들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가를 똑똑히 보여준 것이며, 노동자들을 기계의 부속품보다 더 못하게 취급하는 국가독점자본의 반 노동자적·반 인권적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다.